인천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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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원
김장원(한라정공 대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금속을 다루는 직장에 우연히 입사한 후 금속을 다루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임을 알고 금속을 다루는 여러 직장을 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1982년 한라정공을 설립, 1994년 부천으로 공장을 이전, 2000년 지금의 남동공단으로 확장, 이전하였다. ‘쇠쟁이’ 기능공에서 엔지니어로 기업의 대표가 되기까지 평생을 금속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였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시기 VCR 전자제품 부품(금성사, 현 LG), 자동차 브레이크 부품(현대기아자동차)의 국산화에 성공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한 세계화의 흐름에 ESG경영을 기업 운영과 생산공정에 도입해 태양광 설치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생산공정 전 과정을 자동화, 무인화하여 노동시간 단축, 안전한 작업현장, 투명한 재정운영 등 남동공단에서도 모범적인 기업으로 알려져 한라정공을 선정하였다. -
김재열
김재열(남동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재열 남동문화재단 대표이사(이하 김재열)는 1971년 ‘보루네오 가구(BIF 코리아)’에 말단 디자이너로 입사하여 디자인 실장, 생산부장, 디자인연구소 소장을 거쳐 2004년 디자인 상무로 정년 퇴임할 때까지 가구산업 분야의 디자이너이자 경영진으로서 역동적인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다. 1995년 『월간 디자인』은 그를 ‘한국의 대기업 디자인 경영자 8인’의 한 사람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보루네오 가구만이 아니라, 남동공단에 집적한 인천 가구산업의 역사와 현장의 경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산 증인으로 이번 구술채록 사업에 선정되었다. 그는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였고, 인천의 풍경을 그리는 수채 화가이며, 인천광역시 예총 회장을 역임하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교육자이자 예술인, 행정가로서의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
박인서
박인서(인천상공회의소 전 상근부회장) 박인서는 인천에서 출생해 학창시설을 보내고 한국토지개발공사에 입사하여 남동산업단지 조성과정의 분양업무를 담당하였다. 지금까지 남동산업단지 조성과정과 관련해 구술을 채록한 사례는 전무하다. 남동산업단지는 서울 및 수도권에 산재한 공해공장을 집단화하기 위한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지만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나타나는 도시경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강제 철거 및 이전 방식으로 추진된 특성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당시 경제 상황과 이전을 원하는 공장들의 현실, 분양 및 보상 업무 등 한국토지개발공사의 역할, 이주민 보상 및 이전 과정의 문제 등을 채록하기 위해 박인서를 선정하였다. -
박종한
박종한(에스피지악기 대표) 평생을 부평 산업단지에서 일하고, 기업을 일구어 나간 관리자이자 경영자. 2015년 “부평산단 50주년기념” 영상에 출현, 지역 산업사 기록화 작업에 적극적 태도 보임. 삼익악기 중 기타 생산 공정이나 기술변화 등에 대한 담당자. 해외 기업 방문 경험 많음. 부평 산단과 주변 지역의 변화 증언 가능. 삼익악기는 부평공단(4공단)에서 한 때 전체 부평공업단지 면적의 2/3 가량을 차지할 만큼 대표적인 부평공단의 기업이었음. 그리고 구술자는 삼익악기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기타 생산 라인을 떼서 동료들과 함께 에스피지악기(주)를 설립함. 이 기업 역시 기존 삼익악기 생산시설을 이용하다가, 부평공단 내 타 부지로 이전함. -
송병태
송병태 (G밸리 산업역사박물관 조성 추진위원) 한국산업단지공단(옛날 초기에는 한국수출산업공단)의 공식 역사에서 부평공단(4공단)과 주안공단(5, 6공단)의 역사는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그 대신 남동공단이 인천을 대표하는 공업단지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산업화 과정의 초기에 인천에 조성된 공업단지는 부평공단과 주안공단이었다. 부평공단과 주안공단이 1980년대까지 30여년 간 한국과 인천의 성장에 기여한 부분이 간단히 잊힐 수는 없는 역사이다. 부평공단은 1970년에 인천 수출의 40%를 차지했을 만큼 비중이 컸다. 1970년대에 전국에 특정 업종을 키우는 산업도시들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수도권지역에 규제가 도입되면서, 그리고 남동공단의 조성과 1990년대에 산업구조의 변화가 진행되면서 부평공단과 주안공단 지역 산업의 지형도는 변화했다. 한국수출산업공단의 인천지역 공업단지인 4~6공단에서 일했던 분들을 섭외하기 위해서 한국산업단자공단 인천지부, 주안부평지사, 부평사무소 등의 책임자를 만났고, 이들을 통해서 퇴직한 선배 2명을 추천을 받았다. 이 퇴직자를 통해서 원로 그룹을 소개를 받았다. 그러나 원로 그룹의 경우 어느 한 사람이 구술 증언을 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았고, 다른 퇴직자는 조사 기간(60-90년대) 중에서 핵심이 되는 80년대와 90년대에 대한 증언이 어려웠다. (1989년 입사자였음) 그래서 최종적으로 1981년에 입사하여 2013년까지 한국산업공단에서 일했던 송병태 님이 구술자로 선정이 되었다. 게다가 이 분은 구로공단(1~3단지)에서 20년 넘게 일했고, 인천 부평공단과 남동공단에서도 상대적으로 오래 일한 경력이 있었다. 또한 2020년 이후 구로공단 관련 산업역사박물관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추진위원’으로 일하면서 누구보다 한국수출산업공단의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다. -
송석만
송석만(인천탁주 ‘소성주’ 전무) 인천탁주협동조합 ‘소성주’ 송석만 전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술을 빚는 노동자로 입사하여 50여년 한 길을 걸어온 산업화 1세대다. 인천의 토착기업이 사라지고 있는 때 1974년 국가의 11개 양조장 강제통합으로 설립된 인천탁주협동조합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빚는 세대를 거쳐 자동화 시설로 막걸리를 생산하기 까지 산업화 1세대와 현 3세대가 함께하는 인천의 대표적인 막걸리 기업이다. 소성주의 전통적인 막걸리 ‘맛’은 송석만의 코끝에서 나오는 50여년의 경험과 인천탁주 협동조합의 사회적 기여가 있다는 점이 그를 선정한 이유다. -
이경호
이경호(영림목재 회장) 영림목재는 이경호 회장(이하 이경호)의 부모님이 1969년 설립한 회사다. 이경호는 1978년 28살의 나이로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영림목재를 이끌어오고 있다. 그는 영림목재를 특수목 분야 국내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자이며, 인천 목재산업의 성장과 쇠퇴 과정을 말해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으로 지역나눔 활동에 앞장서 왔고, 각종 대외 활동(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대한민국농구협회 부회장, 피지 명예대사, 한국파렛트컨테이너협회 명예회장, 강원대 연구초빙 교수, 지송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 회장 연임 등)을 통해 인천을 알리고 사회에 공헌해왔다.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인천 목재산업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말해줄 수 있는 인물이자, 사회공헌에 앞장서 온 인천의 대표 기업인으로서 이번 구술채록 사업에 선정되었다. -
이해양
이해양(서울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이해양은 1983년 공업고등학교 졸업 직전 서울ENG에 기능공으로 입사하여 현재 대표로 재임 중이다. 한 회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기능공이 전문경영인으로 기업의 리더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68년 설립, 1977년 주안산업단지로 이전한 서울ENG가 국내외 독보적인 제품 ‘풍구’를 생산하고, 수출에 성공한 배경이 대표의 강한 리더쉽 뿐만 아니라 ‘친인척은 채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노조는 필요하다.’는 설립자의 철학과 조직문화에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 선정하였다.




